효고현 중앙부 반탄(하리마 및 다지마)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외길. 시카마항에서 시작되고 이쿠노, 더 나아가 나카제로 약 73km 구간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광산의 채굴・제련에 필요한 기계나 일용품 등의 물자 및 산출된 금・은・구리 광석을 수송하는 루트로 정비되어, 많은 사람들과 마차가 활발히 오갔습니다.
시카마항에서 시작되어 종착점인 광산 밀집 지역으로 향하는 길을 더듬어가면, 광산과 공생한 역참마을과 거리가 차례로 형성되고, 관산 경영의 중심지였던 이쿠노에는 지금도 가동 중인 금속공장에서 조업하는 소리와 제련 냄새가 퍼지며 '광산의 고장'의 활기 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길은 이쿠노에서부터 북쪽으로 이어져, 미코바타・아케노베・나카제 광산에 이릅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땅 속을 깊이 파고 금・은・구리를 찾아 들어간 광부들의 숨소리가 갱도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반탄을 가로질러 광산 밀집 지역으로 향하는 여행. 그것은 광산 마을의 운치 있는 경관 및 지금과 옛적을 접하면서 메이지~다이쇼~쇼와 시대로 이어지는 시간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여정입니다. 일본의 근대화를 밑받침한 광물자원 대국의 기억은 이 땅을 여행하는 이들에 의해 이야기가 되어, 오늘날로 이어집니다.
하리마의 시카마항(현 히메지항)과 이쿠노 광산간 약 49km를 잇는 마차 전용 도로로 건설된 것이, 일본 최초의 고속 산업 도로로 일컬어지는 '은의 마찻길'(정식 명칭:이쿠노 광산 숙소 마차 도로)입니다. 이 마차 전용 도로는 탄생한 지 얼마 안되는 메이지 정부의 관영 사업으로서 외국에서 초빙한 장 프랑수아 코아네의 지도하에 그의 처남 레옹 시슬레를 기사장(技師長)으로 맞이하여, 초대 이쿠노 광산국장인 아사쿠라 모리아키의 지휘로 머캐덤(Macadam) 포장을 비롯한 유럽의 최신 기술을 도입하여 건설. 일본에서 가장 긴 획기적인 마차 전용 도로는 3년간이라는 돌관공사에 의해 메이지 9년(187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세토 내해에서 시작해 반탄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히메지시의 시카마항 주변에는 지금도 이쿠노산 벽돌로 지어진 창고 '시카마즈 물양장' 터와 항만 호안이 남아 있고, 오늘날까지 마찻길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근대 도시 히메지의 가장 중요한 수송 기지로 여겨진 시카마즈항의 번성했던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찻길은 시카마항에서부터 북쪽으로 길 따라 똑바로 향하며, 히메지성 아래를 빠져나와 전원 풍경 속을 완만히 이어집니다. 전체 구간 중 최대의 난공사였던 이치카와 강변의 도호리에 위치한 이쿠노 다리 기슭에는 '마찻길 수축비(修築碑)'가 있으며, 이 마찻길 수축이 당시 일본에서는 미증유의 큰 사업이었다는 내용이 아사쿠라 모리아키의 글로 적혀 있습니다.
전원 풍경 속을 완만히 이어지는 길을 가다보면 오래된 집들이 곳곳에 보이는 인상적인 거리를 만나게 됩니다. 마찻길의 물자 중계 거점이 되어 나날이 크게 번성하여, 메이지 19년(1886년)에 군청(지금은 자료관으로서 공개)도 들어선 후쿠사키초의 쓰지카와 마을에는 히메지번의 오조야(촌장)를 지낸 '미키 가문'이 있는데, 수축 당시에 저택의 일부를 마찻길을 내는 데에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가 소년 시절에 이 미키 가문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는 사연도 이 지역만의 흥미로운 시절의 흔적으로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주운(舟運)의 기지로 번성하여, 당초 마차 도로 구간에서 제외되었던 이치카와초 소재 야카타 마을의 주민들이 메이지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 마차 도로가 지나게 하여 선견지명으로 마을을 쇠퇴 위기에서 구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차 도로 개통으로 문을 닫은 다카세부네(작은 운송선) 정박장 터도 강변에 남아 있습니다. 가미카와초의 후쿠모토번 저택이 있었던 후쿠모토, 그리고 광산에 필요한 물자를 갖추는 반입 기지 역할을 한 이쿠노의 관문 아와가마치. 독소 제거를 위해 즐겨 마신 선령차(仙靈茶)를 제조・판매한 차 도매상 「다케우치케」의 모습. 그 어느 것도 메이지 시대의 번화함과 약동을 느끼게 합니다.
길을 웬만큼 달려 중반을 지나 가미카와초에 진입하면, 유일하게 당시 은의 마찻길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현존하는 마찻길 터'가 있는데, 실제로 보고 걸으며 당시를 추억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새로 정비된 미치노에키「은의 마찻길 가미카와」(도로 휴게소)에는 관광정보가 제공되는데, 마찻길 산책 시 휴식 장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리마의 경계를 이루는 이쿠노 고개를 넘으면, 청정한 이치가와 강변에 취락이 펼쳐집니다. 그곳은 하리마와 다지마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다지마의 입구. 갱도 굴착으로부터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일찍이 '사도는 금, 이쿠노는 은'이라 는 말과 함께 유명했던 우수한 광산 마을, 이쿠노입니다. 붉은기를 띤 이쿠노 기와를 얹은 지붕, 격자의 디자인에 공을 들인 마치야(전통 양식의 상가 겸 주택), 광물 찌꺼기를 돌 모양으로 굳힌 '가라미 돌'을 돌담・토대에 사용하는 등 광산 마을만의 독특한 경관을 간직한 구치가나야 지구를 빠져나오면, 이쿠노 광산 본부가 설치된 공장이 나옵니다.
아사고시의 이쿠노 광산과 광산촌은 국가 선정 중요 문화적 경관으로 지정되고, 마을 여기저기에는 근대화에 함께한 자산이 곳곡에 있고, 메이지 시대에 설치된 광산 본부는 1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주석 제련 공장으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메이지 원년(1868년)에 메이지 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관영 광산이 된 이쿠노에는 근대화를 선도하는 모범 광산으로서 최신 기술이 도입되었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자원대국 일본 건설을 목표로 동력의 기계화, 화약을 사용한 채굴, 광차(鑛車)를 이용하기 위한 대규모 갱도, 수은을 사용한 제련 등 외국 전문가를 초빙해 유럽에서 수많은 근대적 기술을 적국적으로 도입하고 추진했습니다.
활기찬 소리와 냄새가 광산의 마을임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이쿠노가 메이지 시대에 '서양 기술에 의한 광산 근대화'를 단기간에 이루어 낸 배경에는 현대의 제조업과도 통하는, 인력 중심의 수공업적인 생산 시스템을 부지런히 구축한 점이 초석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이쿠노 광산의 중심 갱도인 가나가세는 「사적: 이쿠노 은광」으로서 공개되어, 전체 길이 약 1000m의 근대 광산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쿠노의 마을에는 관영 광산의 관사로 지어진 광산 사택을 비롯해 광산촌의 번영을 알려주는 옛 거리가 정비되어 있어, 산책을 하며 광산촌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광부들의 건강를 위해 재배되어, 훗날 일본 3대 파 중 하나가 된 '이와즈 파'와 광산촌의 인기 메뉴였던 '하이라이스'을 통해 마을의 생활과 광산의 밀접한 연관성을 알 수 있어, 즐거운 여행의 재미를 더합니다.
반탄을 관통하는 '은의 마찻길'과 '광석의 길'은 이쿠노 광산에서 교차합니다. 세노 내해의 시카마항에서부터 이어지는 마찻길은 이쿠노에서 끝나며, 금・은・구리 등의 광석을 찾아 이쿠노에서 더 북쪽으로, 구리 산지 미코바타・아케노베, 금 산지 나카제로 나아갑니다. 옛 추억을 만날 수 있는 듯한 나무가 죽 늘어서 있는 길을 걷다보면, 2경간 연속 아치교가 아름다운 '하부치 주철교 '와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고 다리 전체가 주철로 만들어진 '미코바타 주철교'가 나오고, 미코바타 선광장에 도착합니다.
계단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과 원추형 시크너(Thickener), 경사지게 뻗은 인클라인(케이블카)의 궤도. 경사면을 이용해 광석을 선별하는 선광장 시설 터. 동양 제일의 규모를 자랑했다는 압도적인 대 파노라마의 한켠에는 당시 광산 사무소로 사용된 건물도 공개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미코바타 선광장의 역사와 모형 등 다양한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미코바타에서 아케노베로 이어지는 길. 쇼와 시대 초엽, 이 두 지역에는 메이신 전차라는 광석 운반 전용의 광산 철도가 건설되면서 아케노베는 광산, 미코바타는 선광장으로 각각 역할을 분담하여 일본 최대의 주석 광산으로 발전해 갑니다. 산을 관통하는 약 6km 구간 중 70% 이상이 광부들이 판 터널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메이신 전차는 광석을 운반하는 틈틈이 1엔이라는 일본에서 제일 싼 운임으로 광부 가족이나 각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교통수단이 되면서 '1엔 전차'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엔 전차'는 지금까지 보존되어, 당시 차량을 사용한 부활 운행을 정기적으로 하여, 아케노베 지역 진흥의 상징으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아케노베의 마을에는 나가야(연립주택) 양식으로 지어진 광산 사택, 영화관으로 사용되었던 교와 회관, 공동 목욕탕이 있었던 건물과 절・신사 등 지난날의 모습이 남아 있어서 시간을 초월해 정취 깊은 풍경 속을 산책할 수 있습니다.
총연장이 무려 550km에 이르는 갱도에 광차 궤도를 깔아 지하 1,000m의 깊숙한 바닥으로 이어지는 아케노베 광산의 일부는 '아케노베 광산 탐험 갱도'로서 공개되어 있으며, 갱 안에는 폐광 때까지 사용한 다이주 수직 갱도 터, 차량계 광산 기계, 착암기, 1톤 광차 등이 당시와 똑같은 모습으로 전시・공개되어, 근대 광산의 웅장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광석의 길은 다시 북쪽으로 이어져 '광산이 낳은 남북 73km의 길'의 종착점, 서일본 최대의 광산이었던 나카제 광산에 도착합니다. 나카제는 메이지 시대에 이쿠노와 더불어 관영화되었고, 쇼와 시대 들어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한때는 일본 최대량의 금광석을 채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카제 광산에서 선광, 분리한 금도 이쿠노・히메지를 거쳐 시카마항으로 운반되어, 세토 내해에 떠 있는 가가와현의 나오시마 제련소에서 잉곳(ingot, 地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나카제 광산의 기술은 지금까지 잘 이어받아, 일본 최대의 안티몬 제련장이 가동 중입니다. 니카제에는 광산과 관련이 있는 거리가 남아 있으며, 광석을 전시하는 「나카제 금광 검문소」라는 교류관이 있습니다.
시카마항과 이쿠노・미코바타・아케노베・나카제의 광산 밀집 지역을 잇는 '은의 마찻길', '광석의 길'은 메이지 시대에 나타난, 생산부터 수송・물류에 이르는 '바다와 산을 연결하는 광업 콤비나트'였습니다. 이 길에는 많이, 빨리, 멀리 운반하기 위한 사상과 첨단 기술이 꽉 채워져 근대화의 방향을 바꾼 광산 경영의 시스템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그 모습은 지금의 생활을 밑받침하는 '제조업'의 시초라는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반탄을 관통하는 73km의 궤적을 더듬어가는 길은 일본을 광물자원 대국으로 만든 근대화를 추진한 선인들의 국제성과 혁신의 기질을 접하는 여정. 금・은・구리를 찾아서 왕래한 사람들의 교류가 낳은 다채로운 생활과 문화를 만나는 여정입니다. 산업유산과 자연이 빚어내는 절경을 돌아보고, 그 지역에 면면히 이어지는 숨결까지 몸소 느낄 수 있는 이야기는 시간의 고요함 속에서 그 문을 열어줄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